박범준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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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면 되잖아요."

폐아스콘 불법야적 사건 취재 끝자락에 두산건설 관계자 입에서 나온 말이다. 맞다. 치우면 될 일이다. 그런데 치우지 않아서 문제가 된 일이다. 두산건설은 인천시 중구 서해대로를 재포장하기 위해 기존 도로를 뜯어냈다. 여기에서 나온 부산물이 폐아스팔트콘크리트, 즉 폐아스콘이다. 폐아스콘은 건설폐기물로 중금속이 함유된 유해물질이다. 중금속이 체내에 축적되면 면역기능장애, 정신장애를 비롯한 각종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 여기에 수많은 차들이 도로를 달리면서 흘린 기름이 폐아스콘에 스며든 상태라서 유해성의 피해 범위는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런 위험물질 수 십t이 430여 세대가 사는 삼익아파트와 고작 20여 m 떨어진 곳에 버젓이 쌓여있었다. 비산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하는 방진덮개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펜스 위에 있던 방진망은 거의 뜯겨진 상태였다. 현장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잠깐 창문을 열어놨는데 실내공기가 탁한 느낌이 들고 목이 아팠다"고 한다. 60대 남성은 "바람이 심하게 불 때면 하늘이 새까맣게 변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보도가 나가자 두산건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부랴부랴 방진시설을 보수하고 모든 폐아스콘 위에 덮개를 설치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사람이 미래다'

텔레비전에서 한 번 이상은 봤을 법한 두산그룹의 광고 문구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두산건설이 얼마나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었는지를 보여준 사례가 되고 말았다. 사실 '사람이 미래다'란 문구는 구체성이 없어 추상적이고 뜬구름 같은 느낌이다. 우수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것인지, 거시적으로 고객을 위한 경영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슷한 느낌으로 '사람이 먼저다'란 문재인 대통령의 구호가 있다. 어느 공사든 현장에서든 사람을 우선했을 때 이번 사건과 같은 상황은 벌어질 리 없을 것이다. 언론의 회초리가 스쳐 지나가는 고통의 순간이 아닌 진심으로 사람을 배려하는 기업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