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

오(俉)와 열(列)을 맞추어 200만개씩 한 단위로 쌓여 있었다. 커다란 벽돌처럼 비닐로 꽁꽁 싸여 있기는 했지만 시큼한 냄새가 보관창고에 가득했다. 지게차 한 대가 제품들을 옮기며 정리하고 있었다. 몇 해 전 한국은행 금고에서 견학했던 조(兆)단위의 만원권들이다. 겉보기는 영락없는 무생물이다. 그러나 득되는 곳에 득달같이 달려가는 질주본능의 생명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에서 기준 금리를 0.25% 올렸다. 달러에게 모이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국 경제는 활황이고 완전고용에 근접했다고 한다. 양적완화(Quantitative Ease)라는 명령 하에 미국과 전세계를 누비며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더 활동하면 과열되니 소집령을 내렸다. 달러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100m 달리기의 출발선에 선 것인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대란을 다룬 '빅 쇼트'라는 영화가 있다. 금융사들은 집을 담보로 무분별하게 대출을 하고 그것을 엮어서 파생상품까지 대량 생산했다.

주인공은 집값이 떨어지고 그 파생상품이 부실화 될 수 밖에 없다고 예상한다. 그래서 '빅쇼트', 주택시장이 망할수록 돈을 버는 투기적인 금융파생상품을 개발한다. 결국 떼돈을 벌지만 주변은 황량해졌다는 결말이다. 미국경제는 이후 대형금융사의 연쇄부도 등으로 위기를 맞았고 세계경제를 혹한기로 밀어 넣었다. 이에 미 연준은 총재였던 벤 버냉키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린다는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돈을 풀었다. 우리나라도 금리를 낮추고 돈풀기를 하며 집을 사라는 정책을 폈다. 

상황은 돌고 도는가? 미국이 양적완화를 멈추고 연준이 금리를 높이니, 우리 가계부채 상황판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가 금리를 올리지 않고 우리나라에 투입되었던 달러가 빠지면 금융시장이 겪을 혼란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런데, 금리인상은 1360조원까지 폭증한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을 건드릴 수 있다. 카드 남발과 연체율 증가로 인한 2003년 신용카드사 사태, 일부 저축은행의 과도한 대출로 인한 2011년 영업정지 사태 등 과잉유동성 후 후유증이 떠오른다. 

인천의 경우 가계대출이 근래에 큰 폭으로 늘었다. 1인당 지급이자액,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 비중, 지급이자 비율 등이 전국 평균도 훌쩍 넘고 광역시 중에 최고다.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의 증가속도도 더욱 빠르다. 충격이 다른 지역보다 클 수 있다.

가계부채 중 가장 큰 부분이 주택담보대출이다. 인천의 주택담보채권은 증가의 속도도 타 시도보다 높다. 경제자유구역의 주택 공급이 많았고 역내 전입 인구가 많이 는 것이 원인이다. 

상황을 낙관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꼭 이자율을 올린다고 한 것도 아니고 미세한 조정이 큰 충격을 주겠냐 한다. 주택담보채권도 신용등급이 높고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국가에서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또 6월19일 부동산 규제정책에서 일단 인천은 벗어났다. 주택시장이 얼어붙거나 주택가격이 담보대출금보다 하락하는 시나리오는 좀 멀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금리인상이 어려운 계층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천은 개인 워크아웃도 전국 광역시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가계일수록 주택담보대출을 필요 이상으로 일으켜 주택구입 뿐 아니라 생활이나 자영업 운영 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은 금리의 조그만 변동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부담을 주는 이유다. 소득의 감소보다 부채의 증가가 소비감소에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에 따른 경기 둔화도 우려된다.

한은은 금리인상을 가급적 늦추어야 한다. 수출에서 안정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고 또 꼭 금리인상이 자본유출 방지와 동조화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린다고 해도 미리 취약계층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와 인천시가 해야 할 역할이다. 가계부채 총량관리, 원금 초과 이자부금 금지, 적극적인 취약계층 부담 경감책 등 공약사항을 시행하고 서민금융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