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스스로 독립투쟁 역사를 과소평가하고, 국난 시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네. -김영관 <100년 편지>중에서
며칠 전 한 기사에서 이 문장을 읽고 가슴이 서늘했다. 이 글은 93세의 김영관 한국광복군동지회 명예회장이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의 <100년 편지>에 고인이 된 광복군 동지들에게 쓴 글이었다. 8월15일 광복절이 다가오고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웠던 독립운동가는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은 홀대받고, 친일파가 득세하는 세상에 분노했다. 정의가 거꾸로 선 상황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생생한 현실이라고 말할 때, 그의 깊은 고립과 절망과 회한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는 1944년 징병되었고, 부대가 중국에 배치되자 탈출해서 석달 만에 광복군을 만났다고 한다.

"정말 감격적이었다. '태극기에 대하여 경례' 구호에 맞춰 거수경례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양 볼에 줄줄 흐르더라. 애국가 제창 때도 우리 탈출병 5명은 곡(당시는 영국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이었음)을 몰라서 따라 부르지 못했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는 가사를 들으면서 그저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순간을 영원히 못 잊는다. 그때의 감격이 내게는 초심이다. 양심대로, 또 나라를 배반하지 않으면서, 거창하지 않더라도 국가와 사회를 돕자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93세의 노병은 독립운동가들이 세웠던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년 출범)를 인정하지 않고 1948년을 기점으로 건국절을 삼으려고 했던 지난 정부에 좌절했다. 그렇다면 대한제국 멸망 후에 한반도에는 국가가 없었다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정당한 대우는커녕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 자체를 폄훼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노병의 눈물이 다만 노병의 것인가. 적폐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

광복 72년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격동기를 거쳐 왔고, 그럼에도 나는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 걸음의 보폭을 앞당길 때이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