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징용노동자상'이 세워졌다.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인천건립추진위원회는 12일 부평공원에서 이 상(像)의 제막식을 열었다. 징용노동자상에 붙은 제목은 '해방의 예감'.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본 육군 조병창에서 일해야 했던 지영례(89) 할머니와 이곳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벌인 이연형(1921∼2009년) 할아버지, 두 실존 인물을 부녀(父女)의 연으로 묶어 만들어졌다. 부평공원은 일제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군수공장이 있던 곳이다. 징용노동자상은 지난해 10월 이 공원에서 제막한 '인천 평화의 소녀상' 옆에 나란히 섰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1945년 광복 이후 70년도 넘은 이제서야 이뤄진 것은 너무 늦지 않았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부평지역은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최대 군수기지를 조성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제가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을 강제로 노동현장에 끌고가 핍박하고 혹사시켰는가. 하지만 쓰라린 역사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

부평지역에는 1930년대 말 일본군 군수공장인 조병창이 들어섰고, 주변에는 20여곳의 일본기업이 조병창 하청공장을 운영했다고 한다. 조병창에서만 1000명이 넘는 강제 동원 조선인이 일했다. 각종 문헌을 통해 지금까지 밝혀진 인천지역 강제동원 규모만 2만4470명에 달한다. 당시 인천부 전체 인구 15만∼16만명(일본인 포함)을 감안하면 일제의 만행이 어떤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인천도시철도 1호선 동수역 일대에는 아직도 미쓰비시(三菱)의 한자어인 '삼릉(三菱)'이란 지명이 남아 있을 정도다. 일본의 통계자료를 보면 일제 강점기 일본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만 782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8·15 광복절을 맞는다. 마침 극장에서는 영화 '군함도'를 통해 일제 강점기 징용 노동자들의 참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일제 때 동원한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우리나라 법원 판결도 나왔다. 일제가 우리에게 저지른 악행들을 결코 잊지 말자는 이유에서일 터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