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조조삼소(曹操三笑)의 이야기는 그 전개되는 장면들 자체가 무척 극적이기도 하거니와 전장(戰場)에서 벌어지는 장수들 간의 수읽기를 압축하여 즐길 수 있는 재미가 깊다.

적벽대전에서 패해 달아나는 조조의 머릿속을 앞서 꿰뚫어보고 요소요소에 조자룡·장비·관우를 매복시킨다는 제갈량의 지략과 급히 달아나는 중에도 상대를 비웃다가 번번이 망신을 당하는 조조의 실패를 대비하여 전장은 이렇게 언제나 피아의 속셈 읽기로 죽고 사는 것이라는 손자의 병술을 재미 있고 실감나게 보여준다. 비단 제갈량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고금의 병가(兵家)에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의 가르침은 언제나 금언이다. 유사 이래 지구 위에서 벌어진 어떠한 전쟁들이라도 대개 이 원칙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대에서도 국가 간 안보의 경쟁이 결국 첩보와 정보의 전쟁이고, 이 부문의 능력 차이가 국제적인 힘의 위계가 된다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분야를 담당하는 조직들이 항상 우선적으로 물갈이와 판갈이의 수난을 반복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연일 이어지는 북·미의 극단적 공방전 한가운데에서 직접 당사자인 대한민국 정부가 보여주는 정보의 부정확성과 애매한 외교적인 모습이 혹시라도 그러한 정치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정보부서들의 활동에 장애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근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국가급 문제에 무지한 일개 시민이 아는 체하고 나설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핵심 정보들이 국내외 매체들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현대사회에서, 이 정부는 어찌해서 이렇게 밖에 대응하지 못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나라 안팎 매체들의 정보를 기초로 하면, 현재 숨 가쁘게 전개되는 북핵 문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과연 김정은이 품은 분명한 복심이 무엇이냐는 점과 이 문제를 둘러싼 미·일·중·러의 선택의 논리가 무엇인가라는 점이 그것이다. 물론 이 두 문제는 서로 강한 상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어 그 해답이 몹시 난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의 중심에 핵심적인 '트러블 메이커'인 김정은을 놓고 4자의 선택을 연관적으로 추론하기로 한다면, 이 문제 해결의 핵심은 김정은의 뱃속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도 집요하게 핵에 매달리느냐 하는 것과 왜 미국을 정조준해서 싸움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느냐 하는 것, 그리고 그는 정말로 전쟁을 불사하는 것일까라는 정도로 그 요점을 압축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들에 대해선 이미 국내외에 대강 답이 나온다. 군사력을 통한 주체적 강성대국의 완성은 김씨 집안이 삼대째 이어오는 양보할 수 없는 집권의 지도 명분이거니와 전시에 준하는 긴장을 지속함으로써 내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도 핵무장만한 수단이 따로 없다는 데에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 별로 이견이 없다. 거기에 더해 중·러에서는 북쪽에 전진 배치된 핵전력에 대한 지배가능성의 유혹은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의 매력이 아닐 것인가. 그가 미국에 집요하게 들이대는 이유 또한 명백하다. 휴전협정의 당사국론을 넘어서 한반도에서 반민족 침략 집단을 몰아내 민족주체의 강성대국을 이룩한다는 소위 민족해방전쟁의 명분 또한 북측이 삼대를 이어온 민중 선동의 핵심이거니와 통진당 등의 예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내부의 추종 세력들이 매달리는 결집 논리의 중심이기도 하다.

또한 김정은으로서 자신이 살아남는다는 대책이 존재하는 한 전쟁을 원하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중·러의 지원은 이미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고, 전쟁이 대전으로 확전된다면 연합 대 동맹의 일원으로 싸우면 그만이고, 한반도 국지전이 된다면 또 다시 6·25의 모델로 가면 될 일이다. 제2의 김일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결국 싸워도 좋고, 미적대는 사이 어차피 몰래 만들 수도 없는 핵과 ICBM을 완성할 수 있어도 좋다는 명백한 계산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 과정에서 일본의 핵무장과 참전이 이뤄진다면 이는 곧 대한민국의 대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은 그에게 제2의 월남전의 망상을 꿈꾸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만일 김정은의 복심이 실제로 이와 같다면 우리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을 것이다. 절대적이고 시급한 전력의 강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국방외교와 선전의 강화, 국민 통합과 민족해방전쟁 논리의 봉쇄…. 무엇을 좌고우면할 텐가. 전쟁의 실현 유무를 넘어서 빨리 선택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