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공동체' 되살리는데 힘써

한 주부가 있었다. 나름 공부를 잘했고 활발했지만, 결혼 후 육아와 집안 살림에 묻혀 살았다. 큰 아이가 6살쯤 됐을 때,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 지역대표라 할 수 있는 '기초의원' 자리에 올랐다. 연수구의회 박현주(54·비례·자유한국당) 의원의 이야기다.

"경력단절여성에 딱 맞는 삶을 살았어요. 늦게나마 사회에 나와 공부방을 차리고 사업을 하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죠.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여성단체에 있다보니 인연이 닿았어요. 정치를 통해 여성, 지역, 소비자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을까 했지요."

▲'경단녀', 사회로 돌아오다
박 의원은 1963년 인천 송월동에서 1남3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평범한 집안에서 살아가다 연수구로 터전을 옮긴 때는 1970년대 중반쯤이었다. 부모님은 당시 농촌이었던 연수구에서 목장을 운영했다. 아침에는 가축을 살피고, 오후에는 동생들을 돌보면서 자랐다.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박 의원은 인하대 가요동아리 '꼬망스'의 창립멤버였다. 대학가요제에도 나갔지만, 아쉽게도 본선 진출은 못했다고 한다. 송도역 주변에서 야학 활동도 했다. 후회없는 학창시절이었다.

"졸업하곤 신포동의 한 종합상사에 다니다가 신랑을 만났어요.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했고요. 그런데 주부생활을 하다보니 인생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어요."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안 살림을 꾸리는 삶이 전부는 아니었다.

박 의원은 1990년대 초 연수구에서 공부방을 열었다. 그렇게 돌아온 사회에서는 할 일이 정말 많았다. 개인 사업을 시작하니 지역에서 봉사할 기회가 생겼다.

대한주부클럽(현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연수구회장, 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연수구 여성단체협의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을 거쳤다. 지난 2014년 비례대표로 구의회에 입성한 연수구 '경단녀'는 그렇게 사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여성·아동·안전·공동체에 중심 뒀다
박 의원이 주력하는 분야는 여성·아동·안전이다. 엄마와 아이들이 만족하는 사회가 건전하고 행복한 사회라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생활공간을 범죄가 일어날 수 없는 환경으로 바꾸는 '범죄예방 도시디자인(셉테드·CPTED)'에도 관심이 많다.

"얼마 전 연수구에서 초등생 살인사건이 났었지요? 모든 엄마에게 깊은 상처였을 겁니다. 누구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전에 대한 생각과 체계를 다시 잡아야 할 계기라고 봅니다."

박 의원은 특히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원한도 없던 고등학생이 저지른 범행의 바탕에는 서로 간의 무관심, 사라진 죄의식, 공감없는 사회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의 아이를 돌보던 문화도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작은 부분부터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주민이 함께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드는 게 제 희망입니다. 주민의 이야기를 엄마같이 푸근하게, 누나같이 허심탄회하게 들어주는 활동을 하겠습니다."

/박진영 기자 erhis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