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최초의 근대식 군함 '광제호'에 걸려
"역사적 가치 높다 … 국기게양 의미 되새기길"
▲ 14일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광제호, 머나먼 여정' 전시회에서 관계자들이 구한말 인천 제물포항으로 입항 했던 근대식 군함 '광제호(光濟號)'에 게양됐던 대형 태극기를 관람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있는 요즘, 인천지역에 100년 넘은 태극기 한 장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이 태극기는 100여년 전 인천 앞바다를 항해하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인 광제호(光濟號)에 걸려 있었다. 현존하는 태극기 가운데 경술국치 전까지 펄럭이던 태극기는 광제호 태극기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제호가 인천 제물포항을 드나들 때 당시 시민들은 선미에 내걸린 태극기를 보고 가슴 벅찬 감정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그 크기는 가로 145㎝, 세로는 82㎝일 정도로 매우 컸다.

광제호는 1904년 12월 대한제국에 인도됐다. 당시 고종은 열강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군함을 도입하는 데 주력했다.

이 태극기를 내건 주인공은 함장인 고(故) 신순성씨. 그는 광제호의 함장으로서 일본 동경상선학교에서 기선 운항법을 배웠다. 광제호 함장으로 임명된 그는 제물포항에 닻을 내린 뒤 태극기를 광제호에 걸었다.

신 함장은 1904년부터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 전까지 태극기를 달고 인천 앞바다를 오갔다. 하지만 시린 겨울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경술국치 전야인 1910년 8월28일 늦은 저녁, 신 함장은 태극기를 광제호에서 내린 후 35년 동안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고이 간직했다.

태극기가 빛을 보게 된 것은 광복을 맞이하면서다. 신 함장은 광복이 되기 1년 전인 1944년 세상을 떠났다.
태극기는 1945년 신 함장의 장남인 고 신태범 박사와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해 10월27일 열린 기선 부산호의 취항식장에서 신 박사는 태극기를 흔들면서 "광제호에 달았던 것이니 이를 게양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이 태극기는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신 박사의 아들인 신용석 전 인천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2010년 인천개항박물관에 태극기를 전시하도록 했다. 현재는 태극기의 복제본이 인천시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조우성 인천시립박물관장은 "현존하는 태극기 가운데 국치일까지 내걸려 있던 태극기가 없는데,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며 "태극기를 게양하는 가정이 많지 않은데,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회진 기자 hijung@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