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살인' 누명은 벗었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 못 받아
제72주년 광복절에도 죽산 조봉암(1898~1959) 선생에겐 초대장이 전해지지 않았다. 인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의 거목인 죽산의 명예가 절반밖에 회복되지 않고 있다. '사법 살인'을 당한 누명은 벗었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는 국가보훈처에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를 다시 신청할 예정이라고 14일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달 말 이사회에서 서훈 신청 안건을 다루기로 했다. 권범재 기념사업회 이사는 "국가보훈처가 불명확한 근거로 서훈을 보류해왔다"며 "죽산의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올해 안에 재심사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죽산은 누명 속에 잠들어 있었다.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간첩 누명은 벗었다.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내고, 두 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이승만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역사는 다시 쓰였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은 아직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2011년과 2015년 두 차례나 죽산의 독립운동 서훈을 보류했다. 재심 이전에는 억울하게 덧씌워진 '국가변란과 간첩죄'가 가로막았고, 무죄 판결 이후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실린 기사가 발목을 잡았다.

국가보훈처는 '인천 서경정(지금의 중구 내동)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단신 기사를 문제삼았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고, 실제 거주지와 달라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다는 반론에도 국가보훈처는 "소명이 필요하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이날 죽산의 독립운동 서훈에 대한 취재에도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앞서 대법원은 재심 판결문에 "(죽산은) 일제강점기 하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투쟁했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죽산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지난 7월31일 죽산의 58주기 추모제에는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처음으로 놓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독립유공자 3대까지 합당한 예우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죽산의 서훈이 보류되는 동안 국가보훈처를 이끌었던 박승춘 전 처장도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오는 27일 '죽산 조봉암 선생 발자취를 찾아'를 주제로 역사 기행에 나선다.

죽산의 묘비에는 "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라고 새겨져 있다. 72년 전 오늘, 죽산은 일제 감옥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