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예총 사무처장·시인
65살을 넘으면서 이름 아닌 지칭명사가 서너 개로 늘었다. 노인, 또는 고령자는 좀 높은 말로 들려 거부감이 덜하다. 그런데 노땅, 심지어 '늙은 개'라고도 부르니 "너희들도 나이 먹어봐라. 노인이 되고 싶어 되냐?" 하고 쏘아대기 일쑤다. 더 듣기 싫은 말로는 '꼰대'가 있는데, 어원은 여러 가지다. 어원을 찾는 것도 꼰대의 특징인지라, 사전적 의미는 '늙은이나 선생님'을 뜻하는 말이다.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경상도 지방의 방언으로 번데기를 '꼰데기'라고 한다. 나이가 들어 얼굴을 비롯해서 눈에 보이는 살집에 주름이 많다고 해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고상하게 해석하는 방법으론 프랑스어로 백작을 부를 때 '콩데'라고 하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면, 좀 위로가 될 듯도 하다. 일제강점기 친일파 족속들이 자신을 '꼰대'라고 지칭하며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는 얘기는 참으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요즘은 약간 비굴한 명칭으로 꼰대를 '아재'라고도 부른다. 나이가 들어 고집이 센 사람들을 두고 갈라지는 말인데, 소통이 되는 사람은 '아재'이고 꼴통 짓으로 소통이 부재한 사람은 '꼰대'라고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아재'라 불리길 바라는, 꼰대의 애절한 희망도 있지만 다 그게 그거다.
꼰대를 정의하자면, 변화에 둔감하고 권위적이며 이기적일 뿐더러 고집의 두께가 만만치 않아 조직에서 거의 싫어하는 경향을 지니는 사람을 일컫는다. 50을 넘으면 꼰대에 입문하게 된다. 자기 아버지를 꼰대라 부르며 자란 이들은 고된 생활사를 겪으며 살아남은 '괴력의 아버지'를 닮아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며 부단히 노력을 한다. 그러나 가는 세월을 누가 막을까? 사족이 많은 꼰대는 어쩔 수 없이 되어 간다.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추정되는 승려가사(僧侶歌辭) 속 회심곡(悔心曲)의 중간을 보자. "너희들이 청춘이면 백날 청춘이냐"하는 가사처럼 언젠가는 노인(꼰대)이 될 수밖에 없는 세월의 이치가 와 닿는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배웠고 누구보다도 현명하다고 믿으며 집착이 강한 반면 체념도 빠르고 조직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꼰대들을 나이로 가늠하는 세대는 이제 지났는가 싶다. '젊은 꼰대'가 더 많아지고 있음이 문제다. 무엇인가 발버둥을 치며 치열하게 머리에 쥐가 나도록 고민하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 없을 뿐더러 권위적 조직문화에 태생적 금수저를 겸비해 통제불능인 이들이 문제면 더 문제다.

세대 간 권력다툼은 진화되어 온다. 농경·산업·정보사회를 모두 겪고 전란 속에서 살아남아 경제를 이룬 70~80세들을 상대로 젊은이들은 '꼰대 괴물'을 닮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닮지 않으려고 한다고 해서 닮지 않는 게 아니다. 꼰대들의 머리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다 읽어 노하우를 빼먹고 나서 언제 사라질까를 고민해야 하건만 그도 아니라면 젊은 꼰대들은 도리어 '적폐'일 수 있지 않은가. 어쩜 1950년~60년대보다도 더 젊은 세대의 '개저씨'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디지털 시대에 꼰대들은 자신의 성공사례만을 말하지 말고 실패사례를 들려주며 멘토 역할을 자처하지 않으면 '꼴통의 꼰대'로 남는다. 자기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과거 지향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미래를 비교·분석 제시하며 '자기 영웅화'를 피한다면 젊은이들과 교감하며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
각설하고 실질적인 꼰대의 길을 모색해 보자. 내가 아는 J신문사의 P라는 문화부장 이야기를 빌려 말문을 열어본다. 그는 젊은 여성이면서도 젊은 남자들이 싫다고 했다. 그들의 치기와 무배려가 싫다고 한다. 쉽게 판단하고 잘 알지도 못하고 흥분하며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도리어 육체가 쇠잔한 것에 대한 자각으로 뭔가 자신 없어 하는 태도의 '늙은 남자'가 좋다는 것이다. 많은 일을 경험했으되 '그럴 수도 있지'라며 속단하지 않는 여유와 배려 말이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저렇게 괜찮은 노인(꼰대)이 될 수 있을까', '나이 먹는다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멋진 꼰대들이 주변에 꽤 있다. '회춘강박'과 '동안강박'을 크게 느끼지 않고 여유자적 '젊은 오빠'를 닮아가는 자세가 시니어 세대들을 압도한다. 어쩜 대한민국의 품격을 대변한다 해도 과하지 않다면, 꼰대들을 모델로 삼아 '품위 있게 늙는 법'을 배워우는 일은 어떤가. 욕심을 낸다면 이렇다. '어느 연령부터 노인 기초연금을 수혜하고 노인의 몇%를 담당해야 하며, 부자 노인에게 무임승차를 자제해 달라고 주문하는 건 윤리적인가 아닌가, 경로우대의 적정 나이는 몇 살인가.' 이런 이슈를 놓고 토론을 해보는 성숙한 논쟁과정을 보여주는, 감동을 선사하는 이름다운 꼰대의 모습. 확실한 오늘의 문제이자 젊은 꼰대에게 주는 숙제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