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멋 중요 … 고객 돋보일 옷 만들어요"
▲ 고집 센 의상 디자이너, 김테일러씨는 "정도무패(正道無敗). 올바른 길로 가면 한 번도 지지 않는다. 제 인생의 신조입니다"라며 앞으로도 그의 인생엔 의상 디자인 외엔 없다고 자신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본명 김은주, 1983년 신포동에 의상실 열어...'고급 주문복 의상' 지향
패션트렌드 살피러 1~2년에 한번씩 프랑스·이탈리아 다녀와


"안녕하세요. 김테일러입니다."

거울 앞에 선 60대 의상 디자이너 김테일러(예명·60)씨는 반듯하게 펴진 어깨, 곧게 선 허리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손님을 맞이했다.

김테일러 의상실은 전·현직 인천시장과 지역구 국회의원 등 수많은 정계, 재계 인사들이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의상을 제작하러 오는 곳이다. 1983년 인천 중구 신포동의 한 건물 2층, 쇼윈도조차 없는 공간에서 문을 연 김테일러 의상실은 30여년의 시간이 멈춘듯 다른 세상 같았다.

나무로 된 벽장식이 공간을 둥글게 연출하며 고전적이면서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김테일러씨가 이탈리아를 오가며 받은 영감을 그대로 담아낸 곳이다. 자연을 닮은 빨강, 노랑, 초록, 파랑의 실크원단이 여기 저기 걸려 있고 선반엔 각종 원단이 차곡히 쌓여 있다.


▲본명 김은주

"김테일러라고 불러주세요."

김테일러씨는 1993년 미세스코리아에서 최우수로 선정된 인천출신 김은주씨다. 예명으로 활동을 시작해 본명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에게 테일러 이름을 지어준 것은 믿고 따르던 스승이다.

"제가 의상 디자인을 배울 당시 저를 아껴주신 스승님께서 제가 미국의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처럼 예쁘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디자인을 하며 김테일러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죠."


▲오뜨꾸뛰르

김테일러씨는 디자이너 이상봉과 앙드레 김이 다녔던 국제복장학원에서 의상 디자인을 배우고 인천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1년간 인턴으로 신포동의 한 의상실에서 일을 배우다 지금의 의상실 문을 열게 됐다.

김테일러씨가 지향하는 것은 프랑스어로 고급 주문복 의상점을 뜻하는 오뜨꾸뛰르(haute couture)다.

고객이 오면 2층 공간에서 가벼운 대화부터 시작해 고객의 성향을 파악한 뒤 영감이 떠오르면 디자인 컨설팅을 시작한다.

1 대1 상담으로 고객의 체형을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옷을 만들어 기성복에선 찾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첫 손님을 비롯해 여러 고객이 아직도 김테일러 의상실을 찾는다.

그는 고객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옷을 만들기 위해 머릿속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고객이 어떤 날, 어떤 장소에서 입을 것인지를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멋입니다. 고객이 제 작품을 입을 행사를 떠올리며 그 장소와 제 고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동시에 제 고객이 주인공으로 돋보일 수 있는 그런 옷을 만듭니다."

그러나 고객이 원한다고 해도 김테일러씨가 원치 않으면 주문을 받지 않는 것도 예사다.

"고객이 원한다고 해도 모두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선택합니다. 그것은 오뜨꾸뛰르의 특권입니다."

김테일러씨는 패션 트렌드를 살피기 위해 1~2년에 한번씩 프랑스나 이탈리아로 떠난다. 최근에는 일본을 자주 찾고 있다.

일본의 자연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는 그의 작품엔 꽃과 나무, 물, 바람, 하늘, 별이 보인다.


▲하나 밖에 모르는 사람

김테일러씨의 옷 사랑은 초등학교 때부터 유별났다. 학교에 갔다가 점심시간에 집에 가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학교에 갈 정도였다고 한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는 것이 너무 괴롭고 힘들었죠."

남다른 패션센스를 자랑했던 김테일러씨는 학창시절 용돈을 모아 이태원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겼다.

장식이 많이 달려 히피들이 입을 법한 옷을 사입자 그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친이 옷을 걸레로 쓰라고 학교에 보내기도 했다. 이에 질세라 김테일러씨는 수업 끝날 시간에 맞춰 교실을 찾아가 청소함을 뒤져 걸레가 된 옷을 다시 가져와 세탁소에 맡겨 다시 입고 다녀 그의 옷 사랑에 부모님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와이드팬츠가 유행일 당시엔 바지통을 6인치씩 줄여 스키니진을 만들어 입고 다녔다.

그는 35년 동안 의상 디자인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앞으로도 그의 인생엔 의상 디자인 외엔 없다고 자신한다.

"정도무패(正道無敗). 올바른 길로 가면 한 번도 지지 않는다. 제 인생의 신조입니다. 저는 '순수' 디자인을 합니다. 유행을 계속 모니터링 하지만 제 것이 아닌 것은 유행이라 해도 가져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추구하는 것을 벗어나지 않는 의상 디자인을 계속 하고 싶습니다."

고집 센 의상 디자이너, 김테일러씨다.

/황은우 기자 he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