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올해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이번에도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줄소환하는 구태는 되풀이되고 있다. 여·야는 올해 처음으로 증인 신청 실명제까지 도입했다. 국회의장이 이런 행태를 '국회 갑질'이라며 자제도 요청했다. 그러나 여전하다. 오히려 더 악화되는 모습이다. 기업인을 불러 호통을 치는 과정에서 무슨 단맛이라도 있다는 건가. 그 호통으로 국민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라도 했는가. 국민들은 이같은 행태를 결코 바로 보지 않는다. 국회 주변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가 있다. 어느 해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이 대기업 총수를 불러 불같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증인신문에서 간신히 풀려난 대기업 총수가 감사장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호통을 치던 그 의원이 바로 따라 와서는 "본의가 아니었다"며 파리손을 하고선 사과를 하더라는 얘기다.

국정감사는 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국회의 한 기능이다. 정부가 책임지고 있는 나라 살림살이의 잘잘못을 따져 바로 잡는 일이다. 꼭 필요하다면 기업인도 증인으로 부를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을 감시하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날 정도로 도를 넘어있는 것이 문제다. 17대 국회는 국감 증인으로 연평균 52명의 기업인을 불렀다. 이러던 것이 18대 국회에서는 77명, 19대 국회에서는 124명으로 늘어났다. 20대 국회의 첫 국감인 지난해에는 150명의 기업인이 국감장에 불려왔다. 올해 국감에서도 벌써 80여 명의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신청돼 있다. 그러나 각 상임위가 기업인 증인을 추가로 채택할 움직인데다 아직 채택하지 않은 상임위도 적지 않아 지난해 수준을 넘어 설 전망이라고 한다.

정작 기업인을 불러 놓고도 하루종일 기다리게 하고 질의는 고작 몇 십초, 길어야 몇분이다. 기약없이 대기하다가 질의도 못받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냥 돌아가는 사례도 빈번하다. 기업인 증인 호통을 지역구 민원 해결 수단으로 이용하는 장면도 있었다. 증인 명단에서 배제해 주는 조건으로 채용 등의 민원 해결이나 후원을 압박하는 행태도 재계 안팎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국민들에게 바로 보이지 않는 무더기식 기업인 출석 요구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