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이곳만은 꼭 지키자'는 시민 공모전을 실시했다. 전국의 11곳 중 인천의 북성포구와 일진전기 인천공장이 1차로 선정되었다. 그저께 그들은 현장 심사를 위해 동구 화수동의 일진전기 공장과 주변 동네를 둘러봤다. 필자도 그 길을 함께 했다.

일진전기 인천공장은 1938년 화수동의 매립지에 세운 도쿄시바우라제작소에서 출발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4년 군수회사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후 도시바, 이천전기로 사명이 바뀌었다가 일진그룹에 인수되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었다. 인근에서 태어나 성장한 필자는 '이천전기'라는 이름에 친숙하다.

어린 시절 부둣가로 놀러 가려면 공장 옆 철길을 따라 긴 담을 지루하게 거쳐야 했다. 우리 동네에 변압기, 모터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에 다니던 아저씨가 몇 명 있었는데 다들 좋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현재 이 공장은 충남 홍성으로 이전했고 2년 째 비어 있다. 공장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어 담장 밖을 돌며 내부를 살펴봤다. 빨간 벽돌로 지은 작업장 몇 동과 그 사이의 일본식 주택 그리고 오래된 2층짜리 사무동 등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상륙작전 함포에도 용케 견딘 건축물이다.

한때 인천은 해안선을 따라 산업벨트가 형성돼 '임해(臨海)공업도시'라고 불렸다. 대한제분-대성목재-동일방직-두산인프라코아-한국유리-이천전기-동국제강-인천제철 등으로 이어졌다. 이미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공장도 있고 기계가 멈춰 빈 공장으로 남은 것도 있다. 이곳은 서서히 쇠에 녹(Rust)이 스는 것처럼 '러스트 벨트'가 되고 있다.

일진전기 인천공장 터는 용도 변경을 신청했다는 소문이 있다. 공장을 허물고 다른 시설을 들이는 청사진이 이미 그려졌을지도 모른다. 요즘 도시재생의 핵심은 완전 철거가 아닌 지역 고유의 역사성과 개성을 살리는 개발이다. 이곳은 가깝게는 산업화 시절 우리 아버지들의 삶이 녹아있고 멀게는 일제 강제노역의 그늘이 스며 있는 근대산업유산이다. 무작정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생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쇠는 녹슬어도 우리의 머리는 녹슬지 않길 기대해 본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