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에서 104개'. 경기도 소재 각 고등학교에서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각종 경시대회의 실태를 표시한 숫자다. 1년 동안 단 한 개의 대회도 운영하지 않은 학교가 있는가 하면 무려 104개의 대회를 운영한 학교도 있다는 뜻이다. 교과 관련대회 58개, 비교과 관련대회 46개, 모두 104번의 각종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전체 수상자는 6364명, 1208명의 학생 모두가 5회 이상 상을 받은 셈이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고등학교별 교내 상 수여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특히 학생 때는 상을 많이 줄수록 좋다는 주장도 있다. 격려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경우 각종 이름을 붙인 상들이 많다.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라면 다른 문제가 된다. 이른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반영돼 대학입시 당락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아시다시피 학종은 내신 등 교과활동과 동아리·봉사활동·독서 등 비교과 활동을 종합 반영해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이다. 따라서 고등학교의 수상결과에는 공정성과 신뢰성이 엄격한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기준을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이처럼 뻔한 결과가 예상되는 데도 각종 대회와 시상에 대한 가이드라인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학종에서 크게 지적받고 있는 두 가지 비판 즉, 비교과 영역을 중심으로 교사 주관적 판단 개입과 사교육 부담도 결국 이런 시상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김상곤 교육부총리는 취임 후 대입제도와 관련해 "논술·특기자 전형 등은 단계적으로 축소해 학생부와 수능 위주로 단순화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곧 유예되고 말았다. 당시 유예 방침의 도화선이 된 게 바로 '학종'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저신뢰 사회에서 학종은 그나마 엄격하고 세심한 기준이라도 마련돼 있어야 한다. 설령 그렇다 해도 신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상을 상답게,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살리는 게 답이다. 그것이 교육적 방식에도 부합한다. 지금처럼 온 사회가 학벌과 연고에 매달리는 상황에서는 특히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각각의 분야에서 공정한 사회를 위해 헌신한 노력의 대가로 받는 게 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