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이탈리아를 다녀왔다. 어느날 저녁 메뉴는 해산물이었다. 연일 파스타, 피자 등으로 느끼해진 일행은 모두 기대만발이었다. 굴 접시가 나왔다. 5개가 담겨 있었다. 1인분인가? 아니었다. 1인당 달랑 하나씩이었다. 그 나라에서는 굴 값이 '금값'이다. 한 개당 3유로(EUR) 정도 한다. 우리 돈 3600원 정도다. 고대 로마의 귀족 파티에 빠지지 않았던 식품으로, 카이사르(시저)는 굴을 얻기 위해 갈리아를 정복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로마인은 오래 전부터 굴 맛에 빠져 있었다.

인천에서는 굴이 흔한 편이다. 가깝게는 용유도와 무의도 멀게는 연평도와 백령도의 햇살, 바람, 파도가 키워낸 자연산이다. 작고 단단한 몸뚱이에는 짭조름한 바다의 풍미가 꽉 들어차 있다. 굴은 인천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아낙들의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동구 만석동 포구에는 30여 년 전부터 형성된 '굴막'이 있다. 굴 까는 아낙들이 모여 있는 '굴막'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지만 인천에 엄연히 존재하는 공간이다. 섬에서 딴 굴을 담은 무거운 포대를 집까지 옮기느니 포구에서 굴 까는 게 편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하꼬방'을 지었다. 한창 많을 때는 40여개의 굴막이 늘어섰다. 쪽문에 '1호' '2호'…라고 적어 놓거나 아예 문패를 달기도 했다. 한 집에 두어 명씩 들어가 밤새 굴을 깠고 동틀 무렵 다시 굴배를 타고 섬으로 나갔다.

만석포구의 굴막은 이제 거의 다 무너져 내렸다. 스러진 굴막은 두산인프라코어 공장 담벼락에 기댄 채 마치 어두운 굴(窟)처럼 웅크리고 있다. 짭조름한 굴 맛 속에는 인천 아낙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 있었다. 그들은 거친 삶의 껍질을 까며 살아왔다. 포구의 굴막은 이제라도 기록해 놓아야 할 인천인의 고단한 삶의 현장이다. 몇 년 전 굴 까는 작업장은 만석고가 밑에 알루미늄새시로 만든 '굴 직판장'으로 옮겼다. 새로운 굴막이다. 싱싱하고 값싸게 굴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곳을 즐겨 찾는다. 그곳에 가면 시저도 부러워할 만큼 막 깐 생굴을 덤으로 손님 입에 주저 없이 넣어준다. 3유로, 6유로, 9유로…. 입으로 마구 금이 넘어간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