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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문화프리즘] 나무가 운다

2017년 12월 14일 00:0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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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이 왔다가 가진 것 없이 간다는 무욕(無慾)의 삶을 한자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한다. 이 말은 신라 고승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법어 중 으뜸이다.

고려의 고승 나옹이나 조선의 문신 조현명의 글에도 인용돼 귀에 매우 익은 말. 더 친근감이 있는 것으로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홍콩 배우가 사회에 큰 돈을 내놓으며 한 말이 생각난다. '부대래 부대거(不帶來 不帶去)'라고 표현한 신문기사다. 지니지 않고 지닐 수도 없다는 말이 더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만수래 만수거'를 할 태세다. 아니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가죽은 가죽인데 이름을 어떻게 남기려는 것인지…. '돈으로, 재산으로 또는 책으로' 남길 모양이다. 욕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사람이 한평생 정해진 기간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또 하나의 희망으로 책 한권 내서 이름을 세상에 남기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은 말한다. 좋은 일이다.

시인이라면 슬픔의 존재와 생명과 자유를 향한 그리움을 짓고 흔들리는 삶을 튼튼하게 붙잡아 주는 근원적 힘을 독자에게 준다면 몫을 다한 것이다.

소설가 역시 독자에게 삶의 힘과 살려고 하는 힘을 글을 통해 생명적 공감의 울림을 주었다면 분명 이름 석자는 남는다.

어떠한 서적이든 독자의 감흥과 인생에 자양으로 읽어 남는다면 그 역시 성공이지만, 그렇지 못한 책을 상재했다면 이것처럼 낭패는 또 없는 일이다.

지난 일이기도 하다. 어느 전직 대통령의 아들이 나이도 일천한데 자서전을 쓰겠다고 하여 신문이 한결같이 반대론을 쏟아낸 일이 있었다.

필자의 생각을 그때 피력하길, '나무가 운다'고 했다. 왜냐하면 종이의 원료는 펄프이고, 펄프의 원료는 나무이기 때문에 나무가 운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물과 식량 등 부족한 게 한 둘이 아니겠지만, 곧 종이 부족이 올 것 같은 예감도 떨쳐버릴 수 없다. 자원의 문제를 놓고 본다면 정말 나무가 울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일전 출판기념회가 열려 간 일이 있었다. 그날 나는 정말 가로수 길에 있었던 나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얼마나 마음 흡족했는지 모른다.

또 다시 사나흘 후 시집 만한 배판의 표지도 생소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무엇을 쓴 것인지 음풍농월에 미사여구만 가득한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정말 나무가 울 일. 이제 이런 책은 종이 부족 사태를 위해서도 간행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라도 이름을 남기려고 한다면 재고해 볼 일이 아닌가 한다.

반년 정도를 남기고 있는 자치단체장 선거와 지방의원 선거를 앞두고 출판사는 또 다시 호황을 누리며 우리는 홍수처럼 쏟아질 책을 볼 것이다.

그리고 제각각 자기 이름을 알렸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것이다. 글다운 글로, 책다운 책 속에 자기만의 철학과 인생 혹은 정치사 속에 민의를 위하는 감동의 목소리를 담아 읽을거리를 만들어 종이 값을 다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도 내일도 사무실로 혹은 집으로 책들은 걸어 들어온다. 나무가 웃고, 나무가 우는 책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못된 버릇이 생겼다.

책이 책다운 내용을 담고 있지 않으면 버리는 버릇. 글이 글답지 못하다면 빨리 폐지를 모으는 노인들을 위하고, 재생지로 다시 태어나 종이값을 톡톡히 해내라고 버린다.

제발 버리지 않는 책이 많아 학문의 꿈과 소망, 그리고 그 주위에 문방사우의 조화가 살아 있는 책가도(冊架圖)에 그려질 책을 우리는 원한다.

빈 손으로 지니지 않고 가는 게 인생이면 이름은 남겨야 할 것 아닌가. 그렇다면 종이값하고 책다운 내용이 있는 글을 남겼으면 싶다.

이 겨울, 몸에 묻은 문신(낙엽)을 떨구며 나무들은 모진 추위를 견디며 사람들과 더불어 세상을 살 것이다. 그 나무들을 웃게 할 '책'이 필요하다.

/인천예총 사무처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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