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따지는 시대가 왔다. 가심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일컫는 '가성비'를 비튼 단어이다. 무엇보다 '자기 마음'의 만족도를 생각할 기회가 생겼음을 의미하기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자면 자기 마음을 무엇보다 잘 알아야 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이야말로 가성비/가심비는 떨어진다. 무게로만 치자면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평생에 걸쳐 중요할 만큼 무겁다. 인생은 자기를 근거로 무언가를 계속해서 선택하는 일의 연속이다. 인생에서 선택의 '자기 근거'를 위해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려고 애써야 한다.

그러나 자기에 골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에 치이고 생활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다 보면, 몸도 마음도 지치고 그저 다 덮어두고 쉬고 싶은 마음 가득이다. 지금 이 일을 좋아하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관계에서 자신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생각하는 일은 품도 많이 들고 피곤한 일이다.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당장의 명쾌한 답이 나오는 일도 아니다. 가성비는 말할 것도 없고, 뭔가 투자했을 때 마음의 만족이 그에 비례하여 크냐고 하면 그렇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손쉽게 '가심비'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는 어쩌면 당연하다. 마음의 문제는 '~대비'의 문제로 따질 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심비'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 지금의 삶이 자본주의적 교환체계에 익숙해졌을지라도 '나의 마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는 편이 낫다. 그러다가 알게 될 것이다. 어떤 가격을 매겨도 '마음'의 크기에 미칠 수는 없다는 걸. 그러니까 무엇보다도 마음을 이해하자고. 다른 것 때문에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사실 우리는 매년 가심비를 넘어서는 하루를 공유하고 있다. 연말의 희망을 비는 일이야 말로 '가격 대비'와는 무관한 마음의 일이니 말이다. 올해도 가심비 넘어 마음을 고백하기로 한다. 가격 대비가 아닌 그냥 마음만을 고려해도 괜찮은 날이 올 것을 고대한다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