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선생님 말에 의사 진로 변경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 18일 복합문화공간 '당신의 자리'에서 만난 시인 민구는 농담 던지듯 내뱉는 한 마디 마다 시에 대한 애정이 묻어 있었다.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


유독 '달 이야기' 많은 이유?
송현동 달동네서 자란 덕일까
지극히 낮은 것들에 영감 얻어


글을 쓰는 게 마냥 좋았던 소년은 교과서를 펼치기 보단 그저 펜을 잡고 싶었다. '글 쓰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선생님의 한 마디는 그의 펜심을 더욱더 짙게 했고, 계속되는 도전과 습작은 결국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등단케 한다. 한국 문학계를 이끌어 갈 한 줄기 젊은 빛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기 방식대로 고백하고 이야기 하는 게 '시'에요. 누구나 '시심'(時心)은 있고 누구든지 할 수 있어요." 민구(35) 시인은 담담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인천 동구 수도국산 달동네에서 태어난 민 시인은 송림초, 대헌중을 거쳐 인항고에 진학했다. 의사를 꿈꿨지만 성적이 닿지 않아 고민스런 매일이었다. 고1때 담임교사와 면담을 하던 그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네가 글을 좀 쓰니까 그쪽으로 알아보는건 어떠니? 글 쓰는 것도 사람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단다."

그랬다. 내성적이고 조용하던 그는 하고픈 말을 입으로 내뱉기 보단 한 줄 글로 쓰는 데 더 재능이 있었다. 그는 "주변에서도 잘 쓴다고 입을 모으니 덩달아 신이나서 글을 썼다"며 "고2부터 백일장 등 전국대회에 학교 대표로 참가해 수상만 40여 차례 했을 정도로 좋은 결과를 얻곤 했다"고 떠올렸다.

친구들은 매 시간 다양한 과목을 공부할 때 그는 수업시간에 살금살금 나가 도서관에 가서 오로지 문학에만 몰두했다. 도서부였던 그는 틈틈이 서가를 정리하고 책을 읽었는데 그때 우연히 만나 운명을 바꿔준 작품이 바로 김기택 시인의 <바늘구멍 속의 폭풍> 중 '얼굴'이라는 시였다.

민 시인은 "시인들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얼굴을 가렸더니 해골이 만져졌다'는 표현이 낯설고도 와닿아 너무 멋있었다"며 "그때부터 내가 보고 있는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사물과 대상에 대해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학특기자 전형으로 명지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한 그는 4학년 때 '오늘은 달이 다 닳고' 등 3편의 시로 '시인' 타이틀을 얻는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잡히는 족족 손에서 빠져나가 저만치 걸렸나/우물에 가서 밤새 몸을 불리는 달을 봐/여간해서 불어나지 않는 욕망의 칼/부릅뜨고 나를 노린다
<'오늘은 달이 다 닳고' 中>




"써둔 시 8편의 순위를 매겨 5등까지는 김기택 시인의 발자취를 좇고싶어 그가 등단했던 한국일보에 내고, 나머지 3편은 조선일보에 냈는데 조선일보에서만 연락이 왔다"며 "잊고 있었는데 12월23일에 연락을 받아 가장 크고 의미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경쟁률은 천의 자리가 넘는 데다가 공모한 시만 8000편이 넘는 치열한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당히 '시인 민구'로서 이름을 올리고, 2014년 문학동네에서 낸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를 통해 세상을 마주한다.

"엉뚱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긴다며 김민정 시인께서 제목을 지어주셨어요. 엉뚱한 저와도 잘 어울린다나 뭐라나."

'동백', '공기', '움직이는 달', '기어가는 달', '한덩어리 달', '봄, 개 짖는 소리' 등 시 48편이 가 담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민 시인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레 끄적인 솔직한 일기같은 시집이다. 그는 '내 안에 있는 것들, 또 다른 나에 대한 이야기, 날 이루고 있는 유·무형의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했다.

마지막에 실은 '불청객'이란 시는 대학생 때 쓰면서 첫 시집 마지막에 앉혀주겠노라고 약속했고, 결국 성사됐다.




가로등 불빛이 작은방 창으로 들어온다/밥상을 타넘고 안방으로 걸어와서 어머니 가슴에 발을 올려놓는다/괘씸하지만 꽁꽁 언 발을 끄집어낼 수도 없어 그대로 둔다
<'불청객' 中>





유난히도 '달'을 많이 다룬 데는 그가 '뼛속까지 인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무척이나 가파른 송현동 산동네 꼭대기에 살았으니 눈 뜨면 달 보는 게 일상이었어요. 남들은 따뜻하고 풍만한 느낌을 받는다는데, 전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무서우면서도 차갑기도 하고, 나중엔 호빵같이 보여서 뜯어먹고 싶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흔히 그들만의 언어로 '영감님 오신다'라고 하는데, 민 시인은 주변에서부터 영감을 얻는 편이다. 그는 "지극히 낮은 것들에서 힌트를 얻는다"며 "남들은 하찮게 여기고 소외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것들을 오히려 대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성스럽고 대단한 소재를 써 우러러 보는 작품도 좋지만, 작고 소박한 것들을 통해 그들이 벼룩처럼 튀어오르는 운동성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나중에 자식이 시 쓴다고 하면 어떠실 것 같으세요? 사실 한국 사회에서 특히나 30대 남자들이 시인으로 산다는 건 쉽지 않죠."

매일 두 세시간은 책상에 앉아 '본업'에 충실하지만 그는 문화기획자로도 일하고 있다. 연희문화창작촌, 출판사 등을 거쳐 현재 파스텔뮤직에서 자리를 잡은 그는 시와 일 두마리 토끼를 꽉 잡은 당찬 '욕심쟁이'다.
물질적으론 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가 계속해서 펜을 놓지 않는 이유는 '시는 늘 처음이기 때문'이란다.

"처음 만났을 때 호기심이 생기는 게 장점이고, 쓸수록 실력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는 건 단점"이라면서 "그럼에도 시를 계속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런 조건없이 내 창작 갈증을 풀어주고 오롯이 내 자신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시는 외롭고 또 크고 작은 어려움의 연속이라 늘 벽에 부딪히는, 저에겐 '애증'의 존재같아요."
시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시를 쓸 때 가장 즐겁다는 민 시인. 아이러니하게도 '시인'이라고 불리는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내 시가 나아지고 있는지 매일 의문이 남아서, 시가 정말 좋은데 계속해서 채찍질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독자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글쟁이들을 만날 수 있어 동기부여가 된다는 그다. "지금의 나를 있게한 김기택 선생님도 날 알고, 이젠 같은 시인으로서 얘기도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지만 감히 꿈을 이뤘다는 표현은 삼가고 싶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는 두 번째 시집 <1분이 되기 전 영원한 59초>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타인과 주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들의 목소리와 찰나의 순간을 담을 예정이다.

"완성된 시인이 아닌 늘 어딘가 부족한 '쓰는 사람'으로 머물고 싶어요. 나이를 먹어도 더 어리고 팔팔하게, 차별하지 않는 목소리를 솔직하게 들려주는 '쓰는 사람 민구'가 되고 싶습니다."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엔 나직한 목소리로 센스있는 말 솜씨를 자랑하는 그가 들어있는 듯 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 읽을 때는 모르고 지나쳤던 말 사이사이에 그가 전하고자 한 진솔한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었다.

쉬운 언어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온기를 전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그가 말하는 시의 매력이 아닐까.

/송유진 기자 uzi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