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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럼] 금연 각오와 담배의 유래

김신호 정경부장

2018년 01월 29일 00:0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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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도 벌써 첫 달의 대부분이 지났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한다. 얼마 전 잡코리아에서 새해 금연계획을 조사한 결과 흡연자의 80%가 조만간 금연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들어 시민들은 얼마나 금연에 성공했을까? "담배 한 대만 피우고 합시다"는 말을 아직도 하고 있는가?

보건당국은 2017년 전국 성인흡연율이 감소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성인 남자 흡연율은 43.1% 수준으로 집계됐다. 이어 2015년 1월 담뱃값 인상으로 39.4%까지 감소했다가 2016년 40.7%로 다시 반등했다. 담뱃값 인상의 충격이 진정되면서 담배 판매량이 다시 증가했기 때문이다.(담배 판매량은 지난 2014년 43억6000갑에서 담뱃값이 인상된 2015년에는 33억3000갑으로 감소했고, 반등을 보였던 2016년 36억6000갑이 판매됐다.) 각국의 금연정책은 국제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따르고 있다.

금연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담배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한다. 흡연을 습관이라고 여기는 인식을 버리고 질병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담배는 다른 나쁜 습관과 함께 끊어야 한다고 한다. 술, 커피, 탄산음료 같은 중독성 기호품을 멀리 하고 자주 운동하기, 물마시기, 양치질하기 등 습관을 들여야 한다. 셋째, 금연의 장점에 대해 생각하면 담배를 끊기 쉽다고 한다. 예를 들면 담배를 끊으면 거친 피부가 부드러워지고, 체력과 성기능이 강해지는 등 장점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금연효과가 있겠느냐는 주장이다.

담배는 기원전부터 중남미 대륙에 야생종으로 분포되어 있었다. 식물유전학자들은 폐루와 에콰도드의 안데스산맥을 담배의 '기원', 즉 종의 유전적 진원지이자 최초의 재배지로 본다. 담배속 식물은 최근까지 66종이 밝혀져 있다.이들중 니코티아나 타바쿰 종이 전세계 담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니코티아나 루스티카 종은 아시아에서만 일부 재배된다.

우리는 흔히 '메이플라워호'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간 첫 이주선으로 잘못 알고 있다.(1620년 네덜란드인 선원들과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플리머스에 상륙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두 차례 이주선이 북아메리카 버지니아에 도착했다. 그들 이주민 대부분은 1~2년 사이에 추위, 굶주림과 향토병 등으로 사망한다. 이들중 살아남은 존 롤프는 담배재배를 통해 성공을 이룬다.

1492년 콜럼버스 이후 1603년까지 매년 약 100척의 영국 선박이 대서양을 건너 캐나다 연안에서 대구를 잡았다. 대서양 항해에 자신을 가진 영국인들은 신대륙에 상업도시를 건설할 욕망을 냈다. 이를 위해 1606년 버지니아 회사가 설립됐다. 1607년 버지니아 회사의 식민지 건설사업에는 144명이 참여했는데, 103명이 신대륙 버지니아 체사피크만에 도착해 '제임스 타운'을 건설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서는 53명, 다시 1년후에는 6명만 살아남았다.이어 1609년에는 9척의 배와 500명의 구조대 및 이민선이 새로 출발했으나 난파됐다. 존 롤프(John Rolfe, 1585?~1622) 등 400명은 버뮤다에 상륙했다가 배 2척을 만들어 제임스타운에 6개월 후 도착했다. 하지만 이들중 대부분은 추위, 굶주림으로 죽었다. 아메리카 포우하탄 원주민들은 겨울마다 이들 이주민을 먹여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영국인들은 원주민의 대추장 '와훈수나콕'에게 영국의 봉신으로 삼기 위해 의전용 왕관을 씌워주려 했다. 하지만 그는 무릎을 꿇는 요청을 거부했다. 자신은 힘 있는 지도자로서 "다른 사람보다 고개를 높이 들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존 롤프는 버지니아 식민지의 전략적 수출 작물이 되는 담배 재배에 최초로 성공했다. 그는 1614년 인디언 포우하탄 연방 추장 '와훈수나콕의 딸 포카혼타스'와 결혼했다. 앞서 1613년 포카혼타스는 영국-인디언 분쟁을 겪는 동안 영국인들에 포로로 잡혔다. 그이는 잡혀 있는 동안, 세례를 받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1614년 존 롤프와 결혼한 이듬해 아들을 출산했다. 1616년 롤프 가족은 런던으로 여행을 떠났다. 포카혼타스는 유명 인사로 됐고, 환대를 받으며 화이트홀 궁전의 가면무도회에도 참석했다. 1617년 롤프 가족은 다시 버지니아로 귀향하는 배를 탔지만, 포카혼타스는 그레이브젠드에서 원인미상의 병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후 존 롤프는 버지니아로 돌아가 담배의 대량재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담배는 노예제도를 도입시킨 매개체였다. 네덜란드 무역선은 1619년 체사피크만에 20명의 흑인노예를 팔았고, 이는 북아메리카에 노예제도를 도입시키는 비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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