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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삼일학교와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가들

2018년 03월 02일 00:05 (금)
세계적 테니스 스타 정현을 배출한 '삼일공업고등학교'가 3·1절 99주년을 맞아 '민족독립사학'으로 조명받고 있다. 삼일공고의 모태인 '삼일학당'은 115년 전인 1903년 5월7일 수원 보시동(현 북수동) 북감리교회에서 문을 열었다. 수원지역 독립운동을 위한 민족학교로 설립된 삼일학당은 처음 작은 초가집 교회에서 남학생 11명과 여학생 3명으로 시작했다.

수원출신 독립운동가 임면수 선생과 이하영 목사 등 7명은 "삼일학원이 어서어서 알아야 한다. 우리가 너무도 모른다. 어서 배워서 알아야 한다. 국가 독립을 위한 일꾼이 되어야 한다"(삼일학교 80년사 中)며 '교육'을 목표로 삼일학교를 설립했다. 임면수 선생은 삼일학교를 세운 근대교육자이자 1907년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수원의 대표적 독립운동가다. 학교 설립 이후 임면수 선생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나고, 이하영 선생은 6·25전쟁 때 납북됐지만 학교는 계속해서 운영됐다.

일제강점기 삼일학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일제로부터 교과서를 빼앗기는가 하면 1915년 일본이 사립학교 규칙을 공포하면서 폐교위기를 겪기도 한다. 1919년 3월1일 만세운동 이후 삼일학교는 삼일운동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학교이름을 바꾸라는 탄압을 받는다. 결국 1940년 11월9일 학교 이름을 '팔달 심산고등소학교'로 개칭했지만 광복 이후인 1946년 9월1일 학교명을 수원삼일학교로 복구한다.

독립운동가 7명이 세운 삼일학교는 배재학당(1885), 이화학당(1886)과 함께 초창기 근대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등 삼일학교를 빼놓고 수원지역 독립운동사를 논할 수 없는 이유다. 삼일공고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독립운동에 참여한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잊혀져 있다. 3·1운동이 위대한 것은 우리나라 전 국민이 참여했고 전세계적으로 진행됐다. 흔히 독립운동의 근거지는 만주로 많이 알려졌지만 하와이는 물론이고 일본 열도에서도 일어났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내년 '3.1절 100주년' 때에는 독립운동을 했던 삼일학교와 같은 기관과 국내외를 막론하고 잊혀진 기관과 독립운동가들을 꼼꼼히 발굴해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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