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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 다양성과 포용성

조봉래 인천대 중어중국학 교수

2018년 03월 08일 00:05 (목)
병역 경험의 유무와 무관하게 누구나 한 번쯤 '당나라 군대'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흔히 군기가 빠진 군대를 얕잡아 보며 우스갯소리로 쓰는 말이다. 어떤 연유에서 당나라 군대라는 말을 쓰는지 통 알 수 없지만, 당(唐)이라는 나라는 중국 역대 왕조 중에서도 그야말로 압도적인 국력을 자랑했던 나라다.
한(漢)과 더불어 종종 '한-당'으로 이어 붙이는 두 왕조는 중국인에게는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은 그들의 문자를 한문(漢文)이라고 하고 우리가 '중국어'라고 일컫는 언어를 그들 스스로는 한어(漢語)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해외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중국인들은 흔히 '탕런지에(唐人街)', 즉 '당나라 사람의 거리'라고 부르고 당나라는 흔히 '대당(大唐)'이라고 칭한다. 한-당 시기는 중국의 국력이 해외로 적극적으로 뻗어나간 시기이기도 하다. 한무제 때 개척한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적 교역은 당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른다.
중국인의 해외진출, 즉 화교 역사도 당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차이나타운을 당나라 사람의 거리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당은 경제적·군사적으로 부강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문화적으로도 매우 융성했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이백과 두보는 모두 당시(唐詩)의 대가들이었다.

그렇다면 당이 이처럼 모든 방면에서 강하고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의 루쉰(魯迅)'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비판적 인문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그 이유를 개방성과 포용성에서 찾는다.
흔히 몽골이 지배했던 원나라와 만주족이 지배했던 청나라를 제외하곤 중국의 모든 왕조는 한족정권이었다고 생각을 하지만 당은 조금 특별했다. 수(隋)나라가 다시 통일하기 전 혼란기 강자는 선비족 탁발씨(拓拔氏)가 세운 북위(北魏)라는 나라였고 북위 통치자들은 유목민족의 자유분방함과 활달함을 바탕에 두고 농경민족의 차분하고 우아한 문명을 적극 수용했다.

이후 또다시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 황제 양제뿐만 아니라 당 고조 이연(李淵)과 당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생모는 모두 선비족 출신이었다. 따라서 당은 황제부터 한족의 순수성을 강조한다거나 다른 문화에 대해 배타적일 수 없었다. '오랑캐 문화'라고 멸시하였던 북쪽 유목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장점으로 삼았다.
비단 문화뿐만 아니라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기상이 더해져 전혀 새로운 마인드로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는 점이 당을 더욱 강성하게 했다.
당의 수도였던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은 현대의 국제도시만큼이나 규모가 컸는데, 이 도시 안에서 국제적인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경쟁하고 그 장점들이 혼합되었다. 그리고 그 혼합된 장점은 오롯이 중국문화의 주요한 구성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예컨대 중국의 대표적 전통악기로 꼽히는 '호적(胡笛)'이나 '비파(琵琶)' 같은 것들은 모두 이 시기 유목민족들의 악기를 받아들여 발전시킨 것들이다.

현종 후기부터 토지 겸병이 현저해져 율령 체제가 흔들리고, 절도사의 권력이 강화되어 지방의 반란이 빈번했고, 결국 농민반란인 황소의 난으로 국력이 쇠퇴하여 멸망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의 멸망은 체제 내부 모순으로 인한 것이지 당에 필적할 만한 강력한 외국의 침략으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이어 등장한 송(宋)나라는 당이 일구어낸 풍부한 문화적인 토양 위에서 그 학문과 문화의 꽃을 활짝 피운다. 그렇지만 군사적으로는 중국의 역대 왕조 중에서 가장 허약했다. 이는 북쪽으로 거란의 요(遼)나라와 말갈의 금(金)나라가 흥기하는 국제관계에서의 역학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한족의 순수성에 집착한 배타성도 근본적인 한 요인이다.
짧은 시간에 세계의 화두는 이른바 세계화를 뜻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에서 지역화를 의미하는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이 합쳐져서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세계화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이념갈등, 세대갈등, 지역갈등, 종교갈등 뿐만 아니라 성별 간의 갈등도 첨예화되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포용 그리고 적극적인 소통이 절실한 시대라 생각된다. 개방성과 포용성이 한 사회의 발전에 얼마나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를 부강하고 화려했던 당나라의 장안이라는 도시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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