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허다한 제노사이드 중 가장 비극적인 것은 제주 4·3. 인종이나 종족, 이념 문제도 아닌데 최소 3만 이상 주민이 죽었다.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이 같은 민족 같은 국민을 집단학살 한 것. 젖먹이 어린 것들도 숱하게 죽어나갔다. 기록 그대로 "그저 맘에 안 들면 죽여 버리는 미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은 계속됐다. '산 자'들은 긴 세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첨예한 이념대결로 숨죽이고 살았다. 섬에 드리운 공포감과 '빨갱이 콤플렉스'는 쉬 걷히지 않았다. 토박이의 말수 적음과 두드러진 중립 성향은 이 때문일 거다. 그나마 숨 좀 쉬게 된 건 2000년대부터다. 미흡하나마 특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이 최초로 공식 사과하면서 4·3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됐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그나마도 다행이다.
올해는 제주 4·3 70돌. 며칠 전 찾은 제주는 이를 기리기 위해 분주했다. 여전히 가려진 진실을 밝히기, 특별법 전면개정, 피해자 배상, 기림사업 등 과제가 많다. 이 가운데 관심이 쏠리는 건 '4·3 정명(正名)'사업. 즉, 제 이름을 지어주는 거다. 4·3은 지금도 '그냥 4·3'이다. 의거나 항쟁 등 메시지 없이 날짜로만 불린다. 70년이 지나도 의미 없는 몰가치적 숫자로 호출된다. 이름에 담기는 의미를 둘러싼 논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떤 경우든 피할 수 없으며,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따라서 제주 4·3의 이름은 가해자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국가 아닌 제주도민의 입장에서 짓는다는 확고한 원칙에서 출발해야 할 일이다. 아울러 국가폭력으로 처절한 시련의 시기를 견딘 제주도민 스스로 바른 이름 짓기를 지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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