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인천예총사무처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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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자마자 몸조리도 못한 딸은 사위 따라 외국으로 나갔다. 2006년 개띠 해에 낳았으니 만 12살 손주는 한국에 있는 또래 아이들보다 영어도 좀 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짜장면 먹는데 근이(손주의 이름 끝 자)는 무얼 먹을 거야" 하고 질문을 하면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미투'라고 대답 대신 말을 한다. '나도 그렇다'는 뜻. 자기도 짜장면을 먹겠다는 의사표시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 열풍이 한국까지 넘어와 거세게 불고 있다. 미투운동은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 '나도 그렇다'라는 뜻의 'Me too'에 해시태그를 붙여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고백함으로써 그 심각성을 사회에 알리는 경종이다.성차별 편견을 깨는 '혁명'이다.

이 운동은 대한민국의 관행과 조직의 문화운동이 지적되면서 사회인식 변화의 바람으로 세차게 분다. 이제 '나도 그렇다'가 '나도 당했다'라는 뜻으로 바뀌며 여러 분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한국에서의 미투운동은 올해 1월 여검사의 법조계 폭로를 기점으로 시작되자 바로 문화예술계로 이어졌다. 문단 원로시인을 상대로 전개되는가 싶더니 예술계 각 장르로 일파만파로 퍼져 봇물 터지듯 수면 위로 등장해 현재 진행형으로 예측 불허다.

인천에서 미투운동 시작의 방점은 '괴물'의 제목을 단 최영미 시인의 작품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려 찍게 되었다. 어찌 보면 문단의 미투는 인천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인천에서 70년을 살아온 필자는 친한 후배가 많다. 그리 친하진 않아도 어쩌다 술자리에 동석하는 일이 자의든 타의든 있게 마련이다. 음악을 한다는 후배는 평상시에는 점잖은 사람이지만 술이 달달하게 오르면 동석자가 누구든 성적인 농담을 즐긴다. 비어, 속어, 구담도 모자라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욕설을 입에 담는 습관을 갖고 있다. 버릇이 아주 못되고 비인격적 면을 알고부터는 좌석을 의도적으로 피해 오긴 했지만, 다른 사람 입에서 얻어들은 말로는 미투운동에 빗겨갈 수 없는 행동도 있다고 하니 심히 염려된다.
1980년 이전 예술인들의 기행은 그런대로 묘사될 수 있었지만, 그동안 사회가 터부시하던 문제가 곪아터진 것으로 아직 거론되지 않은 분야라고 깨끗한 게 아니다. 흔한 관행으로 치부되어버린 경우다. 사회적 인식을 전환시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화예술계 한 장르(협회)의 회장도 권력일까. 조직원들이 있거나 말거나 그의 막말에서 성적인 언어폭력은 이제 미투운동 차원에서 정화되어야 한다.
시인 천상병이 살아 있을 때 기이한 행적은 지금도 아름답게 묘사되며 '천상 천상병이지' 하는 말로 대신하는 이야기 한 토막. 어느 날 술에 취해 자고 있던 그는 눈을 떠 다시 술을 찾다 손에 잡히는 병이 있어 뚜껑을 열고 마신 것이 향수였다. 그 다음 날 술이 아니고 향수인 것을 안 그는 "내 입에서는 평생 향수냄새가 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문단 일각에서 벌어지는 미투운동의 실체와는 사뭇 다른 시인다운 기담이 아닐까 한다.
살아오면서 선대 예술인에게서 들은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예술 하기 전에 인간이 먼저 되라"는 교훈 같은 말을 음악을 하는 후배가 깨우쳤다면 오죽 좋으련만 순서가 틀린 그가 지금이라도 깨우치고 거듭나길 염원한다.

아무리 뛰어난 예술을 보여준다 해도 향유를 받는 관객의 반응은 차가울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짐승은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을 다시금 떠올려 가솔과 그 후손이 부끄럽지 않게끔 전 예술인들이 새겨야 할 일이다.
'#Me too 운동'은 문화예술계의 정화(순화)로 지속되고 반성하는 운동으로 인천, 아니 전국적으로 승화하여야 한다. 신고하는 사람의 인격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길 빌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