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江都의 꿈 서린 이곳에 중세 연구 중추 키울 것"
▲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 이규훈 소장이 17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연구소 사무실에서 고려시대 도읍지였던 강화도의 역사적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석릉 주변 고분군 7월까지 발굴…고려시대 고고학적 조사 본격화"
"개성 만월대 남북합동 발굴조사, 관계 개선 따라 내년엔 참가해야"
"인천시립박물관과 10월 특별전, 강화도 역사적 중요성 알릴 기회"
"고도 지구 지정 자료 조사 필요…유적 발굴 등 학술적 성과 내야"



2010년 무렵 이규훈(46)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장은 인천 강화에 발을 처음 디뎠다.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에서 일할 때였다. 이 소장은 강화산성 북장대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단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면서 발굴조사가 착수되는 것만 보고 강화를 떠나고 말았다.

수년이 지나 그는 강화문화재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다시 강화 땅을 밟았다. 한강 이남의 유일한 고려 도읍지였던 강화는 그에게 '기회의 땅'이나 마찬가지다. "고고학 전공으로 대학교를 다니며 유적·유물을 발굴하는 게 재밌어서" 문화재 연구를 시작한 이 소장 눈에 강화는 "대한민국에서 고려시대를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이자 "아직 발굴조사와 연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곳"이었다.

봄비가 고려의 흔적을 촉촉이 적신 17일 고려궁지에 가는 길목으로 올랐다. 옛 강화도서관이 있던 건물에 자리한 강화문화재연구소 사무실에서 이 소장이 맞았다. 그는 "취임 1년이 지나면서 할 일이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다. 강화는 알면 알수록 연구할 영역이 많아지는 곳"이라며 웃었다.

▲"고려시대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곳"
고려 21대 왕인 희종(1169~1237)이 묻힌 강화 석릉(사적 제369호) 주변 고분군에선 지난 14일 개토제(開土祭)가 열렸다. 10여기 고분을 7월 말까지 발굴하기 위한 행사였다. 강화문화재연구소가 강화 지역에서 시작한 첫 번째 발굴조사이기도 하다. "올해부터 고려 연구가 본격적으로 막을 연다고 보면 됩니다. 그동안 고려시대 현장 조사는 삼별초 등 대몽항쟁 성격에 그쳤거든요. 강화가 고려 도읍지였던 강도(江都, 1232~1270) 시기의 무덤 양식이나 생활상을 밝힌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2월28일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기관으로 설립됐다. 서울 풍납토성 부근에 잠시 둥지를 틀었다가 옛 강화도서관이 새 단장한 지난해 6월부터 강화에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강화문화재연구소는 풍납토성에서 초기 백제 유물을 발굴하고, 경복궁 복원 조사를 맡았다. 올 초에는 강화 전체 고분군 분포 조사를 마쳤고,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고려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고려시대는 그동안 문헌으로 연구됐지만 고고학적으로 조사된 사례가 거의 없습니다. 강화에서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지으면서 일정 부분 조사가 이뤄졌지만, 학술적으로 발굴한 사례는 드물어요. 현재 강화읍 중심부가 고려시대 도읍이었어요. 강화문화재연구소의 관할 구역이 인천뿐 아니라 서울·경기를 아우르지만 고려시대를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발굴조사가 늦어졌다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강화에는 고려 왕릉 2기와 왕비릉 2기가 있는데, 모두 도굴된 상태다. "청자 등 고려 자기가 익히 알려졌잖아요. 왕릉에 남아있던 고려시대 자기 파편만 봐도 역사적 가치가 굉장히 높거든요. 이번 발굴을 통해 왕릉과 주변 고분의 관계를 밝히고, 유물이 발견되면 고려시대를 역사적으로 규명하는 출발점이 될 겁니다."

▲강화에서 빛을 발한 '외길 인생'
이 소장은 고고학을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재 연구라는 한 길만 팠다. "땅을 파는 게 재밌었어요.(웃음) 유물을 찾기가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발굴할 때는 사전에 지표조사를 하고, 구덩이를 파서 유구가 나오면 확장해서 조사하거든요." 전공을 선택한 계기도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외길 인생'은 강화에 다다르며 빛을 발하고 있다.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는 올해 강화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8 올해의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올 초 평창동계올림픽으로 물꼬가 트인 남북 대화는 고려 도읍지였던 강화와 개성을 연결하는 역사 학술교류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고 있다.

"그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개성 만월대에서 남북 공동 발굴조사를 해왔어요. 남북관계가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중단됐지만 다시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올해 강화문화재연구소가 본격 업무를 시작했고, 준비가 덜 된 상태라서 남북 교류 사업에 당장 들어가긴 어려워도 내년부터는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학계에서도 강화문화재연구소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거든요."

강화문화재연구소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오는 10월29일부터 12월9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과 공동으로 '고려, 강화에 잠들다' 특별전을 연다. 그동안 강화에서 출토된 유물과 고분군 발굴조사의 성과를 알리는 자리다. "강화문화재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인천시민, 지역사회와의 교류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학술자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지만 강화도의 역사적 중요성을 알리는 기회예요. 강화의 가치를 생각하면 시민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도 강화, 중세 연구의 중심"
한강 이남의 유일한 고려 수도였던 강화는 그간 '고도(古都)'로 조명받지 못했다. 문화재청이 지정하는 고도 지정 지구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고도 지구 지정은 역사상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을 골라 역사적 문화·환경을 보존하는 동시에 주민 지원 사업을 벌이는 정책이다. 신라가 터를 잡았던 경주, 백제 도읍지였던 공주·부여 등지가 고도 지구로 지정돼 있다.

"강화가 고도 지구가 되려면 자료 조사가 좀 더 이뤄져야 합니다. 부여·경주는 수십년간 발굴조사로 역사가 규명됐지만, 강화는 아직 왕릉, 건물 흔적 등만 밝혀졌어요. 문헌 조사뿐 아니라 유적을 발굴하고 학술적 성과를 내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인천시가 '강도의 꿈' 프로젝트로 강화를 주목한다는 점은 긍정적이에요."

이 소장은 수도권을 아우르는 강화문화재연구소 특성을 살린 도성 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백제 초기 풍납토성과 고려시대 강화, 조선의 궁궐이었던 경복궁을 역사적으로 잇는 작업이다.

"고대부터 중세·근대에 걸친 도성에 관한 연구가 장기적 목표입니다. 우선 중세를 연구하는 중추적 기관이 되도록 기틀을 만들어야겠죠. 그 길에서 강화는 중심에 있을 겁니다."

/글·사진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이규훈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장은

1971년 경기도 남양주 출생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전공
전북대학교 대학원 석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1999)
문화재청 국립 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2005)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 발굴조사과 학예연구관(2007)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학예연구관(2009)
문화재청 국립 나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2011)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 발굴제도과 학예연구관(2015)
문화재청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 초대 소장(2017)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수도권 문화유산 발굴·보존 맡아 지난해 문 열어
핵심 과제는 고려 도성 학술조사

국립 강화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 국립 문화재연구소 산하기관으로 지난해 2월28일 문을 열었다. 경주·부여·가야·나주·중원에 이은 6번째 지방 연구소다. 기존 지방 연구소가 고대사를 주로 다뤘다면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중세시대 고려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강화문화재연구소의 연구 범위는 수도권을 아우른다. 강화 지역의 고려시대 유적뿐 아니라 백제 풍납토성과 조선시대 경복궁 등 수도권 문화유산의 체계적 학술 연구와 발굴조사, 출토 유물 보존 처리를 담당한다.
강화문화재연구소의 핵심 과제는 강화 고려 도성 학술조사 연구다. 강화 지역의 궁성과 성곽, 사찰지에 대한 기초조사를 바탕으로 발굴, 문화 연구를 벌일 계획이다.

강화문화재연구소는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고려궁지(사적 제133호) 부근 옛 강화도서관 건물에 위치해 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