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오렌지 모텔
벚꽃은 왜 빨리 지는가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
▲ 임경섭 지음, 창비, 160쪽, 8000원


2008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이후 시단의 주목을 받으며 꾸준히 시작활동을 해온 임경섭 시인의 신작이 출간됐다.

첫 시집 <죄책감>(문학동네·2014)에서 세계를 향한 집요하고도 끈덕진 시선으로 삶 속에서 제 부재를 말하는 것들의 공간을 촘촘히 구축해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묘한 현실주의'(송종원, 해설)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시세계를 선보인다.

서사를 이루지 못하고 점멸하는 메마른 현실을 응시하며 아무것도 없는 곳, 그 시간과 공간에 다시 서사를 기입함으로써 '이방의 드넓은 아름다움'(김혜순, 추천사)이 오롯이 펼쳐지는 시편들이 자못 산뜻하다.


●오렌지 모텔
▲ 배선옥 지음, 북인, 104쪽, 8000원


1997년 월간 '시문학'으로 등단한 배선옥 시인이 세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오렌지 모텔>은 묘사적 서술이 시 전체를 끌어가는 리얼리즘 서정시이다. 진술로 쓸 수 있는 부분도 묘사를 통해 그림을 그리듯 시를 쓰는 것이 그의 시 특징이다.

그림을 그렸는데 거기에 설명을 달지는 않겠다는 듯, 묘사와 묘사로 이어지는 시 쓰기를 한다. 묘사와, 진술일 수도 있었던 묘사, 그 사이를 면밀히 살피며 읽는 것이 배선옥의 시를 읽는 귀한 재미이다. 굳이 그 경계를 그어놓지 않는 창작법은 배선옥의 독특한 작법이다.



●벚꽃은 왜 빨리 지는가
▲ 이은택 지음. 삶창. 160쪽. 9000원


교사 시인인 저자의 시집에는 학교에서 만난 학생과 교육에 대한 사유가 빛나는 작품이 여럿 있다. 예를 들어 '18세 선거권'이란 작품에는 '세월호 참사'와 학교에서 벌어진 '18세 선거권'에 대한 토론 광경을 겹쳐 놓았다. 흥미로운 것은 시적 화자가 먼저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소녀들의 토론에 정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소녀들의 외침을 시인은 '4월 산의 연둣빛 신록처럼 번 져 나 갔 다'라고 매조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빤한 기성세대의 참회나 분노가 아니라 참사의 해석 주체를 청소년들에게 되돌려 놓은 것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