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웅변은 은이고 침묵은 금이다'는 말이 있다. 온갖 무책임하고 어지러운 말들의 성찬 속에서 '침묵'이 지니는 묵직함의 가치를 역설한 말일 것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하라"라고 했다. 노자(老子)도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다(言者不知 知者不言)"라면서 침묵의 미덕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그 미덕이 어느 샌가 우리의 의식 속에 내면화되어 절제와 진지함의 확실한 지표이며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맹목의 가치로 강조되기도 한다. 더구나 감정적인 문제에서는 더 그렇다. 이 시에서 '친구 미선이'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그런 침묵이다.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에 대한 '삼킬 수 있는 힘'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희덕 시인은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어떤 이는 사랑의 감정을 감출 수가 없어서. 어떤 이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말을 하고 글을 쓴다. 고독할 때, 우울할 때, 그리고 죽고 싶을 때 그것을 꾹꾹 눌러서 삼키는 것이 아니라 토해 냄으로써 고독을, 우울을, 그리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즉 억압이나 상처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드러냄으로써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한국인의 특이한 병 중 하나인 화병은, 억압과 상처를 확인하고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상태에서 기인한다. 삼킬 수 없는 것들을 억지로 삼키는, 삼켜야 하는 상황이 병을 만든다. 삼킬 수 없는 것이 어디 고통스런 기억이나 분노, 슬픔, 또는 감출 수 없는 사랑뿐이겠는가.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 사이 혁명처럼 번졌던 '촛불'을 기억하자. 감추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낼 때 세상은 환해진다. /강동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