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수산물이야기] 17. 백합
일본 '화합' 상징해 혼례음식 포함
미국 '행복하다'는 뜻 관용어 사용


백합(百蛤)은 전복에 버금가는 고급패류로 민물의 영향을 받는 조간대 아래 수심 20m까지의 모래나 펄에 서식한다. 성장함에 따라 이동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어린 조개는 한천질의 끈을 내어 조류를 타고 이동한다. 수온이 10도 정도 되는 4월 하순에 성장하기 시작하며, 겨울철에 수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성장을 멈춘 후 겨울을 나며 산란기는 5~11월이다.

일본에서는 부부 화합을 기원하며 혼례 음식에 백합을 반드시 포함시켰는데, 이는 모양이 예쁜데다 껍질이 꼭 맞게 맞물려 '합(合)'이 좋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백합이 일본에서 인기가 있다 보니 1960년대 후반에는 외화 획득을 위해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족족 일본으로 수출되어 당시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 중 단일 품목으로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하니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서해안의 갯벌, 특히 부안의 갯벌에서는 지게처럼 생긴 도구를 끌고 다니는 아낙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는 갯벌에서 백합을 캐는 풍경이다. 지게처럼 생긴 끄래(끌개)로 갯벌을 긁으면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조개의 여왕' 백합이 모습을 드러낸다.

백합은 '조개의 여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같은 갯벌이라도 포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수심 깊은 곳에 뚝 떨어져 서식한다. 바지락 같은 대부분의 패류들이 얕은 조간대에 서식하는 것과 대조 된다.

영어로 Clam(클램)이라고 부르는 조개가 백합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스튜인 클램차우더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영어권에서는 자신의 상황에 만족한 태평한 상태를 'happy as a clam'이란 관용어를 사용한다. 도대체 백합의 기분이 행복한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서 이러한 표현을 쓰는 것일까?

원래 옛날에는 'happy as a clam dug at high tide'의 형태로 썼다. 즉 '만조 때 파낸 백합처럼 행복한'이란 뜻이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백합은 갯벌에서 만조 때 잡는 것이 아니라 물이 다 빠진 간조 때 잡는다.

따라서 정신이 제대로 된 백합이라면 밀물이 들어올 때 '아,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마음을 놓을 것이라는 기발한 상상이 가능해진다. 그런 연유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거추장스런 뒷부분이 떨어지고 본체만 남아 쓰이고 있다.

백합은 조개껍데기에 있는 다양한 무늬가 100가지에 이른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백합은 패각에 밤색 나이테가 선명하고, 폭이 약간 긴 타원형인데 비해 말백합은 패각에 톱니 모양(∧∨)의 무늬가 있고 백합보다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백합은 갯벌에 묻혀 있지만 불순물을 계속 내뱉는 습성을 지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싱싱한 백합을 까보면 백합 자체에서 만들어진 뽀얀 조개물이 들어있다. 이는 태음정(太陰精)이라 하여 청혈(淸血), 혈압 등 혈관계 질병에 특효약으로 쓰인다. 따라서 회로 먹을 때는 속에 든 물이 흘러내릴세라 조심스럽게 들이마시고 나서 살을 꺼내 회로 먹는다.

백합을 맛있게 먹는 방법은 호일에 싸서 구이로 먹기도 하고, 날것 회로도 먹기도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으뜸은 백합을 넣고 탕으로 끓여 먹는 것이다. 백합을 끓이면 속에 있는 국물인 태음정이 우러나와 맛이 시원하고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다.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타우린 성분도 많아 만성적인 피로를 풀고 봄철 춘곤증을 물리치는 데도 좋은 식품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맘때 백합도 먹고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까운 인천 섬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강선영 인천수산자원연구소 해양수산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