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얼어붙은 땅들이 녹으면서 흙냄새가 풍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어느덧 노란 개나리와 분홍빛 벚꽃들이 맺혀 우렁차게 봄이 왔음을 알린다.

계절은 추운 겨울을 지나 꽃 피는 봄이 되었지만, 우리의 일상은 아직 봄을 향하는 문턱을 맴돌고 있다.
예년 같으면 주말마다 상춘객으로 북적였을 공원은 한산 그 자체다. 출·퇴근길 지나다 행운같이 맞이하는 꽃나무들을 휴대전화 속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본다.

반가운 모임은 기약 없는 "다음에"로 대체하고 메신저와 전화로 생사 여부를 묻는 것으로 만족한다.
맛집 외식보다는 배달이 가능한 음식점을 찾는다. 부득이 외출 시에는 휴대전화를 손에 쥐듯 자연스레 마스크를 귀에 걸친다.

공무원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주말을 반납한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시간은 잠시 미뤄뒀다. 한적한 길거리는 구청과 시청 사무실에서 내뿜는 빛으로 환해진다. 고위직들은 지역민들을 위한 지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들의 월급을 반납한다.

땀으로 가득찬 방호복, 묵직한 고글로 짓눌린 얼굴 상처는 회복할 시간 없이 하루하루 더 깊게 패지만, 시민들의 치료를 위해 의료진들은 그 모든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자원봉사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무료 도시락을 전달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사랑을 전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써 내려간 편지와 자그마한 돼지저금통을 들고 오는 어린아이, 꼬깃꼬깃 모은 쌈짓돈을 내미는 80대 노인,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마스크와 쌀을 놓고 가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시민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지역 행정복지센터는 명절 못지않은 풍성함으로 가득하다.

건물주들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임대료를 낮춘다. 더 큰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보탠다. 민간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국적으로 퍼진 '착한 임대료 운동'에 공공기관까지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때 아닌 감자 대란이 벌어진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농민들을 돕기 위해 서둘러 한 박스씩 감자를 주문하고, 학교와 어린이집 개학 연기로 울상인 급식 납품 업체에 힘이 되고자 김치를 사 먹기도 한다.

멈춰버린 봄을 맞이하기 위한 시민들의 헌신은 어제도 오늘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머지않아 찾아올 따뜻한 봄, 희생과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은 이들이야말로 찬란한 봄날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곽안나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