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딸 정안옹주와 사위 심안의 분묘 2기가 건설업체와 땅주인의 개발논리에 밀려 남양주시에서 포천으로 이장됐다. 550년을 넘게 한 자리를 지켰던 묘지는 아주 간단한 절차를 거쳐 이장됐고, 직계후손들(종중)이 새 이장지를 찾아내는 데까지는 2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 청송 심씨 종중은 즉각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법원 판단에 따라 시비를 가리게 됐다. 하지만 법 이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한번쯤 다시 돌아봐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이런 우리 모습은 지나치게 무기력한 건 아닌가. 돈 앞에서는 지켜야 할 가치도, 전통도, 의리도, 역사에 대한 한 줌 존중마저 한 순간에 내팽개치고야 마는 패도가 온 세상을 휘감고 있다.

먼저 건설사와 지주, 여기에 종중 측 항의를 받고도 알량한 유권해석으로 권한을 행사했던 공무원들이 있었다. 비극은 지주가 같은 심씨이면서도 직계손이 아닌 데서 비롯됐다. 건설업체는 분묘가 있는 1만2492㎡에 타운하우스를 지을 계획이었다고 한다. 지주는 분묘 2기 이전을 위해 종중 측과 협의를 벌였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건설업체에 위임장을 써주고 이장을 강행했다. 종중 측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은 개장 허가 과정이다. 연고가 있는 분묘의 직계손 여부에 대한 확인을 게을리했다는 것이다. '분묘개장에 따른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우선순위 연고자와 협의를 권장할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남양주시의 주장은 다르다. 분묘개장 신청은 '자손이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쉽다. 필시 법정에서 옳고 그름을 가릴 것이기 때문에 양측 모두 합당한 논리를 세워야겠지만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역사의식은 실종됐다.

남양주시에서 파헤쳐 진 것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역사다. 분묘가 있던 자리 남양주시 오남읍 양지리 인근에는 조선 초기 문신으로 경기관찰사를 지낸 심선 등 심씨 묘역이 단지를 이루고 있다. 대왕의 부마 심안의는 심선의 둘째 아들이다.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과연 이대로라면 전국 각지에 남아 있는 어떤 고분인들 남아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