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발간한 백서가 화제다. 백서는 지난 8년간의 행정을 꼼꼼하게 정리한 기록물이다. '수질오염사고백서', '수원화성수리백서', '음주운전 근절백서', 'FIFA U-20(20세 이하) 월드컵백서' 등 총 36권이다. 한 사건의 발생과 현황, 수원시의 대처과정, 개선사항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대응 매뉴얼도 만들었다. 유사한 사건이 재발했을 때 공무원의 교육교재로 활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이 기록들은 지난 26일부터 29일까지 여수에서 열린 '제 5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에 출품 돼 큰 관심을 끌었다. 쉽게만 생각하면 백서제작이 의미하는 바와 가치를 간과하기 쉽다. 숙고하여 기록이 의미하는 바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록은 단순히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활용하려는 효용적 가치를 훨씬 뛰어넘어 우리 역사의 혈맥에 맞닿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기록물은 모두 11건이다. 독일(17건), 오스트리아(13건), 러시아, 폴란드(12건)에 이어 우리는 멕시코와 공동으로 세계 5번째다. 건수로는 비록 5위이지만 양과 질로 평가하면 그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 470년의 역사를 낱낱이 기록했다. 세계사에서 500년을 이어온 나라는 드물다. 하물며 이처럼 방대한 역사를 기록한 나라는 우리 말고는 없다.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작성한 일기로 국왕의 일과와 지시, 명령, 각 부의 보고, 국정회의 상소사료들을 모두 기록한 승정원일기 또한 그렇다. 정조가 세자시절부터 시작해 후대 임금들로 대를 이어오며 기록한 왕들의 일기 일성록도 200여년에 이르는 방대한 양이다.

이처럼 자랑스런 기록의 전통은 일제시대를 기점으로 잠시 맥이 끊겼다가 현대에 들어 그 가치를 되찾아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과 새마을운동 기록물은 각각 2011년과 2013년에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하지만 우리의 자랑스런 전통에 이르려면 아직 멀었다. 기록은 특정 사건이나 국가적 사안을 넘어 더욱 보편화·일상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수원시가 발행한 백서 36권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다. 우리가 가야 할 길과 방향을 시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